[현대트랜시스] AI와 사람이 만드는 미학

인공지능(AI)이 그림을 그리는 시대. 이제 미술 작품의 창작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펄스나인(Pulse9)이 AI 기술을 통하여 미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사람과 함께 작품을 만들며 공존하지만, 끝없는 배움으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펄스나인의 AI 화가 ‘이메진 AI’. 새로운 미학을 개척하는 펄스나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Q1. 펄스나인(Pulse9)의 시작은 언제인가요?

‘AI 아트 갤러리 아이아’는 AI와 인간의 협업을 모토로 설립되었습니다 ⓒ펄스나인


박지은(펄스나인 대표, 이하 박지은) 2017년 7월에 창업했습니다. 그때는 얼굴인식처럼 한 가지 임무만 수행하는 좁은 의미의 AI인 Narrow AI를 연구했습니다. 그러던 중 엔비디아에서 주관하는 AI 콘퍼런스 쇼케이스를 준비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AI의 모체를 개발하게 되었어요. 쇼케이스 이후 기술을 개선하여 실제 웹툰을 채색하고 그림을 더 정교하게 그릴 수 있는 AI 디지털 이미징 솔루션인 ‘페인틀리’를 정식으로 선보였습니다. 우리의 인공지능 화가인 ‘이메진 AI’는 이 솔루션을 통해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고, 작년 10월에는 ‘AI 아트 갤러리 아이아(AIA)’를 개관했습니다.

Q2. 펄스나인(Pulse9)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요?

박지은 펄스(Pulse)는 주기적으로 뛰는 맥박과 신호를 뜻하고, 숫자 9는 불멸과 완성, 처음과 끝이라는 의미로 해석하여 붙였습니다. 이 두 개를 합쳐 ‘영원한 에너지’를 표방하는 기업을 만들고자 펄스나인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Q3. 사람과 AI가 협업하는 작품을 기획한 의도는 무엇인가요?

국내 최초로 선보인 AI 화가의 작품 ‘Commune with…’는 두민 작가와 ‘이메진 AI’의 협업으로 수면 아래 부분은 AI가 작업했습니다 ⓒ펄스나인


박지은 사람들이 AI 콘텐츠 크리에이터라는 낯선 신기술을 더 많이 알게 되고 가까워지기를 바랐습니다. ‘Commune with…’라는 작품은 ‘이메진 AI’와 극사실주의 작가 두민이 협업했는데, AI 화가의 작품을 국내에 최초로 선보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주송현(아트 디렉터 겸 AI아트갤러리 아이아 관장, 이하 주송현) AI 화가가 인간 화가, 대중, 미술업계와 교감을 시도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어요. 기획은 일종의 사회적 실험의 성격을 담았고, ‘AI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에게 시각 예술과 미술가의 미래를 묻는다’라는 주제를 담았습니다.

Q4. 사람과 AI의 협업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주송현 전시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하고 있는데요. ‘Commune with…’에서는 캔버스를 상하로 나누어 반반씩 그림을 그려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했습니다. 독도의 사계절을 주제로 한 작품에서는 두민 작가와 ‘이메진 AI’가 대결 구도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박지은 ‘5人 5色’에서는 5명의 다양한 화풍을 지닌 작가들과 협업했습니다. 작가 각각의 예술적 키워드를 페인틀리 AI가 학습한 후에 밑그림을 제공했어요. 이후 작가들이 AI가 그린 밑그림에 상상력과 창의력을 더하여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이 기획을 통해 이전 작업에서 볼 수 없었던 작가들의 새로운 변화와 미적 감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전시 중인 ‘엔지니어 展’도 붓과 인연이 없던 엔지니어들이 AI와 협업하여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Q5. AI 미술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은 어떤가요?

박지은 ‘Commune with…’의 펜화 작품을 AI 아트 갤러리 아이아에 전시한 지 5개월이 지났습니다. 반응은 “새롭고 놀랍다” 등의 긍정적인 반응과 “프린트면 복사한 것 아니냐, 이게 예술이냐” 등의 부정적인 반응이 공존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로봇처럼 눈앞에서 작업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없기에 ‘이메진 AI’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온전히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송현 미술계는 AI 화가의 등장을 기회로 볼 것인지 위협으로 볼 것인지를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AI 기술이 사람을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죠. 초기 AI 기술이 미술가의 붓을 대신하는 수단이었다면, 이제 AI는 미술가 그 자체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2018년 AI 화가 오비어스의 초상화는 경매에서 5억 원에 낙찰되기도 했습니다.

Q6. 사람에겐 축적된 삶의 이야기가 있는데요. AI 화가는 어떤 것을 담을 수 있나요? 

주송현 AI 화가는 한 작가가 일생을 통해 경험하고 학습하는 양을 넘어서 다양한 작가의 화풍과 정보를 학습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전에 없던 작품, 인간이 발견하지 못하는 미세한 부분을 포착하여 미적 감각의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길게 보면 AI가 색다른 장르를 탄생시킬 거예요.

Q7. AI 화가가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주송현 당연히 가능합니다. AI는 많은 양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유한 양식을 단기간에 반복 학습하여 전에 없던 창작물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AI의 창작은 반 고흐,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프리다 칼로 등 세계적인 작가의 명화가 가진 오라를 파괴하지 않고 보완하며 향상시켜요. ‘이메진 AI’ 역시 기존 미술계에 등장하지 않은 새로운 화풍과 미적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박지은 ‘넥스트 렘브란트(렘브란트 특유의 화풍과 스타일을 학습해 작품으로 구현한 AI 화가)’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AI 화가의 작품이 보여주는 미적 가치는 특정 화풍의 기술적 유사성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창작물의 출현이 핵심이죠. 따라서 AI 화가가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합니다.

Q8. AI 화가가 작품을 완벽하게 복제할 수 있나요?

박지은 작품을 복제하는 것과 스타일을 복제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어요. 작품을 복제하는 것은 작품 복원 과정과 유사합니다. 현재 루브르 등 대형 미술관과 박물관에서는 소장 중인 고가의 미술품 또는 훼손된 작품을 복원하는데, 이 과정은 3D 입체 분석, X-레이 분석 등 다양한 절차가 필요하여 AI 화가의 범주는 아닙니다.

Q9. AI 화가가 그린 작품의 저작권은 어떻게 되나요? 

주송현 일반적인 작품처럼 AI 화가의 작품이 판매되면 소유권은 구매자가 가져갑니다. 그전에는 AI 화가를 개발한 개인 또는 기업에 소유권이 있었어요. 상세히 살펴본다면 국가별로 저작권 인정 주체가 다를 수 있고, 창작품에 대한 보호 범위가 상이할 수 있습니다.

박지은 AI 화가 그 자체의 저작권은 AI 화가를 기획한 사람, 이를 코드로 생성한 사람, AI 화가를 위한 데이터를 기획하여 훈련한 사람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저작권으로 인한 분쟁 사례가 없고 관련 법규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아직은 AI 화가의 저작권은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사용 권리 정책을 참고하면 됩니다.

Q10. 앞으로의 AI 미술은 어떻게 될까요?

유진 작가의 ‘Anonymous flowers reflected on water’는 ‘이메진 AI’의 밑그림을 바탕으로 완성 되었습니다 ⓒ펄스나인


주송현 예술 세계에서는 처음이 중요합니다. 처음은 곧 새로움을 뜻하며 후대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역사적 가치를 갖습니다. 피카소의 작품이 비싼 이유도 입체파 특징이 담긴 작품에 미술사적 가치가 들어 있기 때문이죠. AI 미술은 새로움의 기념비적 장르입니다. 아울러 미술가들이 AI를 이해하고 새로운 예술 기제로 받아들일 때, 미술의 혁명적 진화와 함께 미술사에 새로운 족적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박지은 “예술가라면 진정한 대중이 나타날 때까지 50년이고 100년이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 대중만이 제 관심사입니다.” 프랑스 화가 마르셀 뒤샹의 말처럼 AI 화가 시대에 맞추어 말을 조금 바꿔보고 싶어요. “50년, 100년 후엔 어떤 작가들이 살아남을까? 어떤 작가가 작품을 비싸게 팔 수 있을까?”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이메진 AI’가 앞으로도 미술가들과 미술계에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며 더 확고한 자리를 잡아갈 거라 기대해봅니다.

Q11.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신이 필요한가요?

박지은 새로움을 만드는 것은 무척 흥분되는 일이지만 정답이 없기 때문에 두렵기도 합니다. 마치 무질서에서 질서를 세우는 일에 가깝죠. 목표는 불투명하고 시작은 불명확하며 과정은 불안정할 가능성이 높아요. 하지만 인생의 답을 찾아가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생존하고, 나아갈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가 있다면 마음이 한결 편할 것 같아요.

Q12. 미술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주송현 펄스나인은 AI 아트 전시, 작가와의 만남, AI 미술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하여 미술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미술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미술관 또는 갤러리에 전시된 수많은 작품 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있다면 그것이 개인에게는 최고의 작품이 되죠.

Q13.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박지은 AI 미술을 포함한 동시대의 미술 작품들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유통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 중인데요. 이 플랫폼을 통해 크리에이터들이 더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AI 기술을 끊임없이 연구·개발하고 싶습니다.



기사출처

https://news.hmgjournal.com/TALK/AI와-사람이-만드는-미학